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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권 떠넘긴 오바마…'존 웨인(세계의 보안관) 아메리카' 포기하나

두개의 전쟁 비용 상상 초월 이슬람과 세번째 전쟁 부담 의회에 예산요청 엄두도 못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차례로 전화 통화를 했다. 오바마는 통화에서 프랑스.영국의 두 정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앞으로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 지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밝혔다. 이는 미국이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한 발 뒤로 물러섰음을 의미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대리비아 군사작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의회에 별도로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연합군의 첫 공격이 이뤄진 19일 미군은 지중해에 배치된 함정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100여 발을 발사했다. 이 비용은 1억1200만~1억6800만 달러(약 1260억~1890억원)로 추산된다. 미 국방부가 재량 범위 안에서 지출할 수 있는 전쟁비용은 10억 달러가량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미 의회에 추가 예산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단기간에 종결될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미국이 지금 '세계의 보안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국제적 현안의 어젠다 제시와 해결은 늘 미국이 주도해 왔다. 미국은 미.소 냉전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990년대 이후 유일의 수퍼파워로 자리 잡으면서 그런 역할을 자임해 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스스로 '세계의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9.11 사태 이후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결정자'로 불렸다. '존 웨인 식 정의의 보안관' 역을 자임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21세기 둘째 10년을 맞은 지금 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가 첫 단초다. 미국이 스스로 세계적 현안의 지배적 플레이어 자리를 내놓고 지원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데 대해 데이비드 로스코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안들에 둘러 싸여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미국을 덮친 금융위기 이후 출범한 오바마의 책상에는 매일 일자리 창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미국.멕시코 간 국경 분쟁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등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들이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2개의 전쟁(아프가니스탄.이라크)을 수행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돈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특히 리비아의 경우 이슬람 국가와 세 번째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무대에서의 퇴장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기질과 민주당 정부의 지향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오바마는 2009년 6월 카이로 연설을 통해 이슬람과의 화해를 주장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업적'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 오바마 대통령 본인이 이슬람과의 대립을 우려하고 있으며 그것이 미국의 리비아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스마트 파워'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이제는 세계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2011-03-23

공화 잠룡들 "오바마 외교정책 부재"…롬니·폴렌티 등 "리비아 사태 늑장 대응" 비난

공화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리비아 사태에 ‘늑장 대응’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외교정책 부재론’을 쟁점화하고 나섰다. 공화당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2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분명하고 신뢰할만한 외교정책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롬니 전 주지사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떤 외교정책도 수립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롬니 전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 사태에 지나치게 늦게 개입했으며, 그 개입자체도 아랍리그,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 위임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롬니 전 주지사는 “미국은 프랑스를 따라서 리비아에 개입하게 된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에) 동참한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미국이 세계의 리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인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군사개입 결정을 지지하지만, 리비아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훨씬 이전에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 도전을 위해 뛰고 있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리비아 사태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은 아마추어 같다고 폄하했다. [연합]

2011-03-22

33년 집권 살레 예멘 대통령 "올해말까지 퇴진"

33년간 집권해온 알리 압둘라 살레(69) 예멘 대통령이 민주화 요구에 떠밀려 퇴진의사를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살레 대통령은 22일 대변인을 통해 "헌법에 근거한 권력 이양의 일환으로 연말 또는 내년 1월까지 퇴진하겠다"며 이런 방침을 전날 밤 정부 관리들과 군 간부 부족 지도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누가 이어받을지 결정되기 전까진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소 유보적 입장도 덧붙였다. 앞서 CNN방송도 살레가 정권 이양 방안을 놓고 군 수뇌부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살레는 올해 말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대신 시위대의 다섯 가지 요구사항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5개 항은 대통령직 연말 사임 시위 자유 보장 시위 유혈진압 관련 조사위원회 구성 시위 희생자 국가 보상 개헌 및 선거제도 개혁이다. 이 밖에 살레 일가의 주요 공직 사임도 요구사항에 포함됐다. 군인 출신인 살레는 1978년 북예멘 대통령에 오른 뒤 통일예멘을 거쳐 지금껏 집권해왔다. 최근엔 대통령 종신제 개헌 등을 추진하다 지난 2월 중순부터 튀니지발 민주화 혁명에 영향을 받은 반정부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그는 임기 종료(2013년) 후 대선 불출마 등 각종 유화책을 내세웠지만 시위가 사그라들지 않자 강경 진압에 나서며 권력 수호 의지를 피력해왔다. 사태는 지난 18일 수도 사나에서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시위대 5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반전됐다. 인권.관광 장관과 유엔 주재 대사 등 관료들이 유혈사태를 비판하며 줄사퇴했고 부족사회와 종교계에서도 반살레 노선을 표명했다. 살레의 최측근인 알리 모흐센 알아흐마르 장군을 비롯한 주요 군 장성도 21일 시위대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의 군 병력만 예멘 군의 약 60%에 달한다. 결국 살레는 군부마저 등을 돌리며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살레는 사퇴 발표에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는 내전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며 시위대 지지군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예멘 국방부 역시 여전히 살레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어 양측 군부 간 전투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21일 대통령궁 근처에선 예멘 정부군과 시위대 지지군 간의 충돌로 양측에서 각각 1명이 숨졌다. 미국은 살레 이후 예멘 권력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예멘은 미국이 벌이는 대테러전의 주요 협력국인 동시에 2009년 미 디트로이트 여객기 폭파 미수사건 등 활발한 테러활동을 벌이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근거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살레와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 그간 미국은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 공개적으로 살레를 지지할 경우 자칫 그가 퇴진하고 난 뒤 예멘과의 관계 설정에 공백이 생길까 우려해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2일 "예멘의 혼란 상황은 알카에다를 도와준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예멘과 별개로 18일부터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정부가 주요 시위 지역에 군 병력을 배치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군은 현재까지 강경진압을 피하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1978년 아메드 알가시미 북예멘 대통령이 암살되자 뒤를 이은 뒤 33년째 권좌를 차지하고 있다. 90년 5월 남북 통일된 예멘의 초대 대통령이다. 94년 내전에서 남부 측을 누르고 재통일을 이룬 뒤 장기 독재체제를 굳혔다. 지난 1월엔 대통령 연임제를 폐지하고 종신집권을 추진하다 국민 저항에 직면했다. 이승호 기자

2011-03-22

리비아 출격 미 전투기 1대 추락, 기계 고장으로…알-자지라 "주요 지휘관 사망"

<속보>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22일 밤(현지시간) 거대한 폭발음이 들린 가운데, 대공포가 격렬하게 발사됐다고 AP와 AFP 통신이 전했다. 트리폴리에서는 이날 밤 8시를 넘긴 시각에 두차례 폭발음이 난 뒤 10여분 간 대공포탄이 밤 하늘을 수놓는 광경이 현지의 외신기자들에게 목격됐다. 미국과 영국 등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4차 공습이 시작됐음을 짐작케 하는 이 폭발음이 정확히 어느 쪽에서 발생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방 연합군은 지난 19일 이후 매일 밤 리비아의 대공방어망을 파괴하기 위한 공습 작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군은 전날 밤에는 트리폴리 외곽의 해군 기지와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공항 등을 폭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 공군 F-15 전투기 1대가 리비아 북동부 상공에서 기계 고장을 일으켜 추락했으나 조종사 2명은 모두 안전하게 탈출해 구조됐다. 아랍 위성채널인 알-자지라 방송은 연합군의 3차 공습으로 카다피 여단의 주요 지휘관 중 1명인 후세인 엘-와르파리가 숨졌다고 전했고, 카다피의 6남이자 그의 최정예 부대인 제32여단을 지휘하는 카미스가 사망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으나 리비아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2011-03-22

리비아 공습 최종 목표는?…엇갈리는 각국 정부들

서방 연합군이 지난 19일 리비아 군사작전에 돌입한 가운데 군사개입에 나선 국제사회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해지면서 벌써부터 이번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연합군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한 초기 목적은 리비아의 방공망을 무력화시켜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비행금지구역을 시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영국 BBC뉴스가 20일 지적했다. BBC뉴스는 방공망에 대한 공격으로 작전 수행에 자유로워진 다국적군이 이제 군사 공격의 근거가 된 유엔의 '국민보호책임'을 리비아 사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유엔 안보리도 리비아 국민에 대한 카다피 정권의 탄압을 막기 위해 이번 군사작전의 근거이자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는 카다피 정권의 축출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용으로 하고 있지 않아 군사작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현 상황에서 연합군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카다피 퇴진이 미국의 입장이라는 점은 밝히면서도 리비아에 대한 공습작전에서 미군이 주도하는 양상은 조만간 끝날 것임을 거듭 시사했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로버츠 게이츠 국방장관도 이날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군사작전의 첫 2~3일동안은 미국이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조만간 지원하는 역할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게이츠 장관은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리비아 영토에 미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없어질 경우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그것은 리비아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으로서는 카다피가 국가원수로 계속 남더라도 이번 군사작전을 끝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이번 군사작전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번 작전이 카다피 정권을 그대로 남겨둔 채 어정쩡한 교착상태로 마무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군사개입에 나선 국제사회의 모호한 목적의식과 구체적인 출구전략을 결여한 군사작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2011-03-21

카다피는 '사막의 라이언' 무크타르 숭배자(리비아 독립운동가·1862~1931)…끝까지 갈 것

“카다피는 갈 곳이 없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같이 물러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 침략자 이탈리아에 맞서 20년간 게릴라 저항운동을 벌였던 ‘사막의 라이언’ 오마르 무크타르(1862~1931)처럼 끝까지 자존심을 지킬 것이다. 무크타르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나중에 체포돼 처형당하더라도 맞서 싸울 것이다.” 카이로 아메리칸대학 정치학과 왈리드 카지하 교수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다피가 서방의 공격에 항복하기보다는 끝까지 버틸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크타르는 1931년 이탈리아군에 잡혀 교수형을 당할 때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투쟁은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는 19일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 대해 “식민지 침탈 공격이자 야만적이고 부당한 침략행위”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밝혔다. 사태 초반인 지난달 21일에도 그는 시위사태가 외세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 남을 때까지 싸우다 숨지는 순교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처럼 도망가는 지도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카지하 교수는 “카다피는 무크타르처럼 영웅이 되어 사라져가기를 원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카다피는 무크타르를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의 10디나르 지폐에는 무크타르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무크타르를 다룬 1981년 영화 ‘사막의 라이언’의 제작비도 카다피가 지원했다. 무크타르 역은 앤서니 퀸이 연기했다. 2009년 이탈리아를 방문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 카다피는 무크타르의 사진이 가슴에 새겨진 제복을 입고 나타났다. 카다피가 끝까지 항전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방은 물론 아랍권에서도 그의 언행은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 3월 이집트에서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 자리다. 카다피는 이라크 전쟁에 앞서 자국에 미군 배치를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제(현 국왕)에게 ‘개’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모욕을 주었다. 자신이 학살한 국내 부족민은 물론 자신이 모욕해온 주변 아랍국가 지도자들이 자신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임을 그도 잘 알고 있다. 현재 서방의 개입이 단순히 벵가지 진격을 막는 데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저황경질유를 수입해야 하는 유럽으로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정제시설이 거의 모두 경질유에 맞춰져 있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반군 대표기관인 ‘국가위원회’를 승인한 프랑스 정부를 포함한 유럽국가가 카다피 정권을 그대로 둘 경우 석유 금수 등 경제적 보복을 피할 수 없다. 리비아에 친서방 정부를 세우고 주변의 프랑스어권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안정도 꾀해야 한다. 휴전이나 정전은 이제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서방도, 카다피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오마르 무크타르=이탈리아에 맞서 저항운동을 이끈 리비아의 지도자. 1912년부터 20년간 민족 해방운동을 이끌었다. 31년 이탈리아군에 붙잡혀 추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을 당했다. 서정민 교수 기고 amirseo@hufs.ac.kr 한국외대 중동아프리카학과·전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

20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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